형산강 역사문화관광공원에 보부상 유공비 재건립

조선시대 3대 장터, ‘부조장터’ 가치 되새긴다

오선아 기자 / 2024년 03월 14일
공유 / URL복사
“부조리(扶助里) 시장(市場)을 이해해 주시니 그 은혜 바다같이 넓구나. 덕은 높고 인은 두텁고 성품은 강유하였다. 죽어도 은혜를 잊지 못하며 교역은 일정한 예가 있었다. 상벌이 오히려 엄중하니 법도가 더욱 드러났다. 이름은 온 나라에 떨치고 팔임방(八任房)을 크게 하였다. 여기 비석에 글을 새겨 먼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을 전하려 한다”
- 강동 강변도로(옛 외팔교)에 위치한 ‘보부상 비’ 비명


강동면 유금리에 위치한 제산(弟山) 바위 기슭에 보부상의 역사를 기리는 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명에는 ‘좌상대 도접장 김공 이형 유공비’라고 새겨져 있으며 경주와 영일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보부상 우두머리 김이형이 포항과 영일에서 나는 해산물을 양동, 안강, 경주 등지로 효율적으로 공급하며 보부상단을 잘 이끌었기에,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도감 오치삭 등이 1894년에 비를 세웠다.

↑↑ 김이형공 유공비

형산강 역사문화관광공원에서 지난 13일, 부조장 보부상 김이형공의 유공비 재건립행사가 열렸다. 강동면 주민자치위원회는 김이형공의 유공비를 원래 자리보다 접근하기 좋은 위치인 형산강 역사문화관광공원에 모작해 안치했다. 이번 행사는 김이형공의 공적을 재조명하고, 조선 시대까지 현 국당에 있었던 ‘연화장’이란 불렀던 부조장의 역사를 계승하기 위해 마련됐다. 또 이러한 노력은 강동 지역의 브랜드 가치와 문화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목적도 포함하고 있다.

↑↑ 강동 강변도로(옛 외팔교). 파란색 화살표 쪽에 ‘보부상 비’가 있음

강동면 주민자치위원회 이병환 회장은 “조선 시대의 신분사회 구조상 공덕비를 주요 통로에 세우는 것이 제한됐기 때문에, 보부상비를 마을 길인 현 위치에 세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부조장에 대해 “‘동강서원’ ‘고왕록’에 따르면 연화장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며, 이는 ‘상부조장’으로도 불렸다. 일제강점기에 이 상부조장은 하부조장으로 분설했고, 여기가 현 포항의 중명”이라고 설명했다.

↑↑ 보부상 비 터.

 그러면서 “조선 시대까지 강동 국당에서는 닷새마다 장이 섰으며, 동해안의 다양한 해산물이 내륙으로 유통되는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물산 이동은 지역 보부상단이 맡았고, 고을 역할이 자못 대단했기에 보부상단이 나서 보부상 비를 건립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보부상 김이형공의 유공비 재건립이 신형산강프로젝트의 성공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이 되길 기대한다. 더불어 연화장(부조장)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를 계승하고 지역의 문화적 가치 및 브랜드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유공비

최병준 도의원은 “포항에서는 매년 부조장터 문화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해오고 있다. 경주에서 유사한 문화축제를 기획할 경우 초기에는 양 지역 간의 경쟁과 반감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협력과 상생의 기회로도 전환될 수 있다. 조선시대 3대 시장 중 하나로서의 부조장터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경주와 포항이 함께 아랫장터와 윗장터의 역사 및 문화를 재현하고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 도시가 협력해 더 큰 문화적 가치와 관광 자원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X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