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edle in the hay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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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edle in the hay


                                                      황유원


건초 속에서 바늘 찾는 꿈을 꾸었다
건초 속에 바늘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건초 속에는 바늘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었지만 아마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바늘을 찾았다 실제로는 없어도 어쩌면 거기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며 하나둘
건초를 뒤졌다
바늘을 찾으면 무엇을 꿰매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혹시 찔리면 손가락에 붉은
핏방울이 둥글게 맺힐 테고
그러면 건초를 붉게 물들이는 행위예술까지는 아니더라도
행위는 분명
하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며
건초를 뒤졌다
바늘은 빨리 찾아지지 않아도 좋았다
어쩌면 바늘은 빨리 찾아지지 않으면 않을수록 좋았고
영원히 찾아지지 않아도 좋았다
사실 바늘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고
나는 그게 뭐가 됐든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건초 속에서 바늘 찾는 꿈을 꾸었다
건초 속에서 바늘을 찾을 수 있어 좋았다


빛나는 바늘, 건초 속에서 마법을 걸고 있는

↑↑ 손진은 시인
시인의 무의식 속에 왜 건초더미와 바늘이 있었을까? 아마 시인은 농가에서 오래 성장하며 경험했던 친숙한 사물이었기에 그럴 것이다. (실제로 그는 울산에서 그 경험을 하며 자랐다.) 상상력을 조금 더 밀고 나가본다. 그 농가에는 오래 전부터 풀밭에 바늘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을 것이다.

그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늘을 싸고돌며 우리의 피부에 감각에 작용한다. 그건 가축이 그걸 먹기라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후손들의 손가락이 찔리면 안 되지? 하는 염려일 수도 있고, 아니면 바늘을 찾아 헤진 부분을 꿰매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아마 무어든지 분별하고 조심스레 다루라는 조상들의 말씀일지도. 이는 서출지 속에서 나온 노인의 편지에 쓰인 “금갑을 쏘라(射琴匣)”라는 메시지의 알레고리와는 다르다.

‘건초 속의 바늘’ 아무도 그 바늘을 발견하지도 못했고, 찾으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행위가 꿈속에서처럼 실용에서 해방된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쓸모라면 바늘 찾기는 재미있는 놀이가 된다. 그래서 “바늘은 빨리 찾아지지 않아도” 아니 “빨리 찾아지지 않으면 않을수록” 어쩌면 “영원히 찾아지지 않아도 좋”을 수 있는 것이다.

조상들의 말이건 실제적인 말이건 이런 말을 간직하고 있는 집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고 그 가치 때문에 그 집은 설레고 빛나는 것이다. 그 집에서 바늘은 건초더미 속에서 밝게 타오르는 형상으로 마법을 걸고 있는 것이다.

어린 왕자의 말처럼 “집이나 별이나 사막이나 그걸 아름답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시는 어쩌면 “건초 속에서 바늘 찾는 꿈”이 아닐까? 바늘 찾는 게 꿈 같은 일이라면, 찔려서 “붉은 핏방울이 둥글게 맺힐” 일은 그 꿈속의 꿈 같은 일이 될 수도 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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