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뜸과 버금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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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
욕은 강력한 힘을 가졌다. 칵테일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라는 개념을 들어본 적 있을 거다. 파티처럼 시끄러운 곳에서 대화가 가능한 건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이야기를 선택적으로 골라 들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 때문이다. 이런 선택적 지각에 깊은 연관이 있는 게 남 뒷담화나 욕이라니 서글프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홍보 수단으로 쓰기에 아주 매력적이다.
코*콜라와 펩*콜라의 디스전은 트롤 마케팅의 클래식이다. 앙숙 관계인 이들의 상대 비하 전은 광고계에서도 살벌하게 유명하다. 파란색(펩*콜라의 상징인) 캔과 병 부대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빨간 색깔의 영웅이 마침내 적장 손에 잡혀있던 공주 콜라를 구출해 낸다. 각 사의 특정 색깔이며 브랜드 로고며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묘사한다. 명색이 코*콜라 광고인데 영웅하고 공주, 딱 두 명 빼고는 전~부 상대 제품들이다. 이건 뭐 자사 광고인지 타사 광고인지 도통 모를 정도다. 그리고는 이런 글귀가 클로즈업된다. “병을 가져갈 순 있다. 하지만 우리 입맛은 절대 빼앗지 못한다!” 참고로 우리 아들도 공주가 사는 나라의 콜라만 마신다. 트롤 마케팅은 순진한 우리 아들도 아주 그냥 충성도 높은 고객으로 만들어 버렸다.
햄버거 업계는 또 어떻고. 맥*날드와 버*킹의 대결 구도도 아주 유명하다. 그중 하나만 살펴보면, 인도양 중앙에 자그마한 섬이 하나 있다. 활화산에다 무인도인데 섬 이름이 하필이면 맥*날드 섬이란다. 진짜다. 그러니 버*킹 눈에 이 섬은 이뻐 보이겠는가? 섬 이름을 와*(버*킹의 대표 메뉴) 섬으로 바꾸지 않는 한 어림없다. 맥*날드 섬 대(對) 와* 섬, 우리말로 으뜸과 버금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닌가 싶다. 누구 편도 들을 수 없게 만들어 놓고 비즈니스계는 그 반사이익을 챙긴다. 역시나 특정 햄버거를 좋아하는 아들은 엄마 아빠가 먹는 햄버거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곤 한다.
아무튼 아무도 모르는 섬 하나도 트집을 잡으니 상대 기업은 기분 좋을 리 있겠나. 보통 인간관계에 있어 가령 형제나 자매 관계에서 아무리 대들어도 둘째는 둘째다. 맏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기업은 다르다. 일인자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욕을 먹으면서까지 트롤링을 시도하는 이유다. 이에 대응하는 일인자의 반응은 이렇다. 고속도로 옆에 표지판이 두 개 서 있다. 하나는 맥*날드를, 다른 하나는 버*킹 가려면 얼마를 더 가야 할지 보여주는 표지판이다. 근데 버*킹 표지판은 무슨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면 손에 쥐게 되는 영수증처럼 아주 기다랗게 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어디서 우회전하고 어디서 직진하다 어디를 끼고돌면 드디어 버*킹을 만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반면에 맥*날드 표지판은 아주 짧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다. “258km나 떨어진 버*킹은 가는 것조차 어렵죠. 맥*날드는 5km만 가면 되는데...” 햄버거 업계의 맏형이 까불고 있는 동생에게 주는 훈계처럼 들린다. “난 너보다 매장이 1000개가 더 많아. 어딜 형한테 까불어!”
이제 곧 총선이다. 서로 다른 색깔, 당복, 서로 다른 정당 철학으로 무장한 채 지금도 서로가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며 거친 말을 쏟아내고 있다. 마치 온 나라가 트롤 마케팅 한복판에 놓여 있는 듯하다. 정치계가 광고업계와 다른 가장 큰 차이를 꼽자면 승자 없이 모두 패자가 된다는, 아니 선택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부디 올해는 내 예상이 보기 좋게 틀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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