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지는 마음 통하는 사람 많은 곳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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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영
두두리 출판 기획 대표
하남에 산지 햇 수로 9년 되었다. 이만큼이나 살았으면서도 하남은 그냥 사는 곳일 뿐 마음 속은 늘 서울시민이었지 싶다. 그렇다고 하남을 소홀히 여기지는 않았다.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하남의 역사와 문화를 섭렵하고 이곳 지리와 환경을 익히려 노력했다.
그런데도 하남은 늘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현실적 접점이 없었다. 내 사업체가 서울에 있고 아내 역시 강남에 직장이 있었다. 아이들이 자란 곳도 아니고 이곳에서 다닌 학교도 없다.

하남에 오게 된 것은 미사 신도시가 생기면서였는데 이곳에 정착하면서 ‘얼떨결에’ 하남시민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9년이나 살면서도 한 번도 하남시민이라 생각해본 적 없고 고향에 갔을 때도 누가 물으면 응당 서울에 산다고 대답했다.

2016년에 하남으로 이사 와 선거도 무려 다섯 번이나 치렀다. 대선이 2번, 총선이 2번, 지자체 선거를 2번 치렀다. 그러나 대선을 제외하고는 무턱대고 정당만 보고 찍었을 뿐 누가 더 적합한지, 누가 더 나은지를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고 달리 알아볼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이렇다 보니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둔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디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 일이 당장 나에게 불편이나 손해를 끼치지 않는가 정도만 관심을 가질 뿐 이게 장기적으로나 교육적으로 또는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은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마음으로 자기 도시, 자기 동네에 살고 있을 것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분당이니 일산, 중동, 판교 같은 오래된(?) 신도시를 비롯해 미사, 다산, 위례 같은 신흥 신도시에 이르기까지 신도시 사람들은 응당 자신들의 거주지가 서울이라는 인식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 총선에서 특정 후보를 돕겠다고 결심하면서부터 이웃과 주변 사람들을 챙기다 보니 비로소 내가 하남시민이란 사실이 와닿았다. 선거운동을 하다 보니 함께 진영을 꾸린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고 지역 현안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9년 동안 살면서 알량하나마 단골 가게와 아는 주민들까지 챙기면서 그들과의 유대도 깊어지게 되었다. 그들이 모두 내 생활 언저리를 떠돌고 있었다 싶었는데 이번에 새삼스럽게 하남이 내 삶의 자양분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반면 의외로 이런 신도시에서조차 지역 연고를 따지는 어이없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거주에 대한 공동체 의식이 참 엉뚱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참고로 하남시가 미사신도시 들어서기 전인 2015년에는 고작 14만 인구였는데 미사 신도시가 들어온 후 33만에 이르게 되었다. 더구나 하남시 이전 광주시의 동부읍이던 시절에는 5만 명이 채 되지 않은 소도시였다. 그렇다면 과연 원주민, 토박이 주민을 어느 단계에서부터 보아야 할까? 그런 판단 기준이 얼마나 부질없는 비교인지 알면서도 ‘나는 언제 이곳에 와서 살았으니 원주민이고 너는 언제 이곳에 왔으니 객이다’고 우기는 것이다.

연고라는 것은 결국 햇수가 아닌 사람에게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공통의 사건을 치르면서 연대감이 쌓이고 좋거나 싫은 기억들을 함께 공유하면서 연고가 쌓이는 것이다. 그게 많이 쌓이면 연고가 두터워지는 것이고 그 시간이 얕으면 얕은 대로 연고가 쌓이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해묵은 ‘경주 토박이론’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경주에서 연고를 따지는 사람들은 경주에서 최소한 3대가 살아야 하고 경주에서 대학을 나와야 하고 경주에서 자식을 낳아 길러야 한다는 엄격한 연고론을 들먹인다. 만약 이런 연고론을 서울에 적용한다면 서울사람은 급격히 줄어버릴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전 서울시민이 20만 정도였고 한때 1060만이 넘다가 주변 신도시로 급격히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지금은 940만 정도다. 이들에게 경주사람 식의 잣대를 들이대면 과연 몇 명쯤이 서울 사람으로 인정받을까?

다행히 나는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내가 하남 사람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굳이 서울시로 편입하려는 시도에 거부감도 생기게 되었다. 이게 모두 공통의 사건을 통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된 덕분일 것이다. 결국 마음 통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 진정한 연고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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