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무의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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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미 경주아줌마
매년 봄이면 벚꽃이 아름답게 경주를 물들인다. 벚꽃이 만개한 곳마다 사람들이 모이고, 나무는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낸다. 화사하게 피었던 벚꽃이 지고 초록색 싹이 나무를 다시 물들인다. 그렇게 벚나무는 봄 눈을 가득 머금었다가 연둣빛 새싹 옷을 입고 무더운 여름의 햇살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준비한다. 매년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벚나무를 보며 아줌마는 생각했다.

‘나는 어떤 나무일까?’

아줌마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그렇게 잘나지도 않았고 뛰어난 능력도, 그렇다고 아주 부족하거나 문제를 갖고 있지도 않은 그저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그저 그렇게 성장했다. 반백의 나이가 된 지금, 아줌마는 여전히 미완성임을 깨닫는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인생을 안다고, 삶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보니 인생도 삶도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정답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삶을 살아갈 뿐이다. 모두가 살아가지만, 모두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인생의 황금기를 누구는 이삼십 대에, 누구는 환갑이 넘어서 맞기도 한다. 사철나무처럼 매년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서 꿋꿋하게 자리하다 거대한 풍모를 갖춘 나무가 되기도 하고, 묘목의 모습을 벗자마자 매년 과실을 수확하는 나무로 살아가는 삶이 있고, 벚나무처럼 화사한 벚꽃으로 봄의 절정기를 보여주고 이른 여름을 준비하며 녹색 잎을 싹 틔우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로 빈약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철나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황혼기에 거대한 풍모를 갖춘 나무의 모습을 보여주기 전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할 것이다. 과실 나무는 매년 수확하는 삶이지만 벚꽃은 봄의 화려함과 겨울의 앙상함을 매년 보여주는 삶이다. 또한 봄의 벚꽃은 햇빛 찬란한 개화기에는 화사함을 보여주지만, 개화기에 비바람을 맞은 벚꽃은 너저분한 쓰레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같은 나무지만 시기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도 그러하다.

우리는 모두 노력한 만큼 거둘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삶을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그저 나이테를 하나씩 늘려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나이테 간격이 클 때도, 작을 때도 있을 것이다. 모든 조건이 원활하여 크게 성장한 해도 있겠지만, 가뭄으로 태풍으로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한 해를 넘기기가 힘든 시절도 있으리라.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는 데로 살아가다 보면 나이테는 어김없이 생기며 우리의 삶은 모습을 갖춰간다.

나이테가 많아진 만큼 연륜도 생기고 여유도 생겼다. 결코 이삼십 대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다. 그렇다고 나이테가 쌓일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라고 아줌마는 말하진 않겠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알듯이, 과거의 내가 모여 오늘의 내가 되고, 오늘의 내가 쌓이고 쌓여 미래의 내가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나이테를 만들어가면 된다. 이삼십 대에 꽃을 피울 인생인지, 황혼기에 꽃을 피울 인생인지, 매년 조금씩 수확하는 인생인지 우리는 모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오늘의 나를 살아가면 된다.

이렇게 말하면 아줌마는 뭐, 엄청난 과거의 삶을 잘 살아서, 조언한다고 생각할까 봐 미리 고백한다. 물론 열정적인 날도 있었고 열심히 공부한 날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모든 날이 그렇진 않았다. 멍 때리는 날도 있었고 방황한 날도 있었고 불평불만 가득한 날도 있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 들었을 때, 도저히 방법이 없을 것 같을 때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오늘의 아줌마를 있게 했고 내일의 꿈을 꾸는 아줌마로 키웠다고 생각한다.

갈망하니 길이 보이고, 열망하니 길이 열렸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방법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하나둘 쌓이니 요령이 생기고, 그런 경험들이 또 쌓이니 연륜이 되고 여유가 생겼다. 어떤 나무의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위기는 올 것이다. 포기하지 말고 견뎌라. 힘겨운 나이테가 생긴 만큼, 삶은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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