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꽃밥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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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 꽃밥


                                                           공광규


청계천이 밤새 별 이는 소리를 내더니
이팝나무 가지에 흰쌀 한 가마쯤 안쳐놓았어요

​아침 햇살부터 저녁 햇살까지
며칠을 맛있게 끓여놓았으니
새와 별과 구름과 밥상에 둘러앉아
이팝나무 꽃밥을 나누어 먹으며 밥정이 들고 싶은 분

​오월 이팝나무 꽃그늘 공양간으로 오세요
저 수북한 꽃밥을 혼자 먹을 수는 없지요
연락처는 이팔팔에 이팔이팔



온 우주가 차린 밥상, 이팝나무 공양간

↑↑ 손진은 시인
벚꽃 지면 이팝이라고, 대지는 지금 나무 전체가 쌀밥을 이고 있는 듯 흰 꽃으로 뒤덮인 이팝나무 꽃으로 흥성인다. 근교나 가로수 길은 말할 것도 없고, 포항 흥해나 김해 관동동, 대구 달성 교항리, 전주 동완산동 이팝나무 군락지는 수령 수백 년이 되는 나무가 거느리는 꽃그늘 아래로 식솔을 데리고 나온 인파로 들끓고 있다. 사실 이팝나무란 나무 명칭도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쌀밥처럼 고봉으로 솟아오르는 꽃을 보고 붙인 별명이다. 이맘때 산에 가 보면 국수 가락처럼 생긴 국수나물이 있듯이.

이 시는 동시적 상상력으로 쉽고도 재미있게 쓰여졌다. 첫 연부터 시는 천상과 지상의 마주 보는 두 공간을 끌고 온다. “청계천이 밤새 별 이는 소리를 내더니” 청계천 밤물결 흐르는 소리를 시인은 하늘의 별을 받아 그걸 일어 안치는 소리라 한다. 하늘의 별과 지상 개울이 서로 작용하여 별을 일어 “이팝나무 가지에 흰쌀 한 가마쯤 안쳐놓았”다고 한다. 쌀을 이는 게 아니라, 하늘과 내[川], 천상과 지상이 만나 그 기운으로 꽃망울이 맺힌 거라는 말. 꽃을 피우는데 전 우주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꽃이 피는 걸 “하늘이 열리고 있”다고 한 시(이호우, 「개화」)와, “한 송이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다고 한 시(서정주, 「국화 옆에서」)와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 연은 밥을 끓이는 주체부터 이야기한다. “아침 햇살부터 저녁 햇살”이 그것도 “며칠”에 걸쳐 끓인다 한다. 꽃은 햇살에 대기의 온도가 며칠 동안 올라가야 개화되는 걸 그렇게 표현한 것. 그러면 그걸 누가 먹을까? 밥상에 둘러앉아 먹는 건 “새와 별과 구름”. 가지에 깃든 새는 진짜 먹는다, 거기에 구름도 머물다 가면서 먹고, 밤에는 별이 꽃으로 내려와 먹는다 한다. 그 위에 어룽이는 별빛을 상상해 보라. 그리하여 이 밥상은 온 우주가 나누는 밥상공동체가 되고 있다.

그래서 혼자 쓸쓸하게 밥을 먹는 이, “이팝나무 꽃밥을 나누어 먹으며 밥정이 들고 싶은 분”에의 대한 “이팝나무 꽃그늘 공양간”으로의 초대는 셋째 연으로 이어진다. 그 이유는 “저 수북한 꽃밥을 혼자 먹을 수는 없”어서다. 밥이란 나누어 먹으면서 쌓이는
 ‘정’이 들어야 제맛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락처가 “이팔팔에 이팔이팔”이다. 이게 뭐지? 하고 한참 망설일 필요는 없다. 바로 “이팝팝에 이팝이팝”의 유머이기 때문이다. 그건 또 이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하늘거리며 꽃그늘을 거느리는 양태이기도 하다.
 시는 이렇듯 시어 하나가 다 그 양상을 떠올리게 하는, 표정을 지닌 언어로 이루어진다.
그렇다. 이팝나무 공양간이 세상 가장 크고도 따뜻한 밥상이라는 말, 직접 그 나무 공양간 아래 가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푸지게 먹는다는 의미도.

이 시는 참 유머스럽게 쓰여져 있지만 실은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은 넌지시 다 하는 시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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