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깎아서 강을 메우는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8월 01일
공유 / URL복사
↑↑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항생제는 몸에 해로운 세균들의 번식을 억제하거나 죽인다. 문제는 그 세균들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는 거다.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super) 세균으로 거듭나 기존의 항생제를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 세균들의 반격인 셈이다. 항생제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면 이건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인류 생존의 10가지 위협’ 중에서 항생제 내성 문제를 꼽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눈에도 안 보이는 세균한테 무릎을 꿇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지금 당장은 돌파구(breakthrough)가 없어 보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인류는 늘 그랬듯이 어디선가 반격의 카드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존재를 이어가고 있다.

IT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한쪽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딥페이크 사진이나 영상을 퍼트리고 있고, 다른 한쪽은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서 막으려 한다. 딥페이크는 스스로 학습이 가능하다는 의미의 AI 기술 ‘딥러닝(deep-learning)’에다가 가짜를 뜻하는 ‘페이크(fake)’를 합성한 말인데, 재미난 건 딥페이크가 딥러닝의 한 종류인 ‘생성형 대립 신경망’(GAN)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립이라는 단어에서 눈치챘겠지만 생성자와 판별자라는 두 신경망의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상호 진화하는 구조라는 말이다. 즉 생성자는 가짜 이미지를 진짜처럼 보이게 아주 그럴듯하게 만들고, 대척점에 있는 판별자는 생성자가 만든 이미지 중 가짜처럼 보이는 걸 솎아내는 식이다. 어느 전문가의 비유처럼 지폐 위조범은 계속해서 가짜 지폐를 만들어 내고 경찰은 즉각적으로 막아선다.

창과 방패의 무한 싸움에 과연 끝은 있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강력한 스매싱은 더 강력한 블로킹을 부르고 바이러스 침투나 해킹은 백신과 업그레이드된 방어벽으로 이어진다. 끊이지 않는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어쩌면 분리와 대립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이렇게 소통하고 발전해 나간다.

여기서 잠시 다리(bridge)를 한번 떠올려 보자. 다리의 본질적 기능은 무엇인가?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영역을 이어주는 것이다. 예컨대 섬과 섬을 이어주는 다리는 기본적으로 떨어져 있는 두 섬, 즉 분리를 전제로 한다. 소통은 그 분리에서 시작되고 소통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토함산 그 꼭대기 절에 파란구름다리[靑雲橋]와 흰구름다리[白雲橋]가 존재 이유를 가지게 된다. 산꼭대기에 다리라니 무슨 강이나 바다가 있겠나 싶겠지만, 무지한 중생들이 사는 세상과 부처들만 사는 정토를 ‘구분하면서 동
시에 이어주기’ 위해 기어이 다리를 그 사이에 세워 둔 거다.

이 담론에는 분리라는 허무주의도, 그렇다고 소통이라는 낙관주의도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면서 진리를 마주하고,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오면서 이 세상에서 저 진리를 실천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다리(계단)를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거다. 진화이며 발전이다. 사찰 내 다리는 그 자체로 부처의 수인(手印)이나 입보다 침묵하듯 진리를 토해내는 다리고 계단이다.

그런데 현실은 좀 다른 양상이다. 미국 대학스포츠협회(NCAA)가 주관한 수영 대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누가 봐도 남자고 다른 여자 선수들에 비해 머리통 하나는 족히 커 보이는 선수가 여자 자유형 500m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았다. 그는, 아니 그녀는 생식기 제거 수술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으로 성(性)을 바꾼 트랜스젠더 선수란다. 트랜스젠더 선수라도 경기에 참여할 권리는 있겠지만 남성부 소속일 때 462등 하던 선수가 여성부에 출전해서 바로 1등을 한다면 이건 좀 정상적이지 않다. 

차이가 있기에 소통도 있는 거지, 차이를 기어이 소통시켜야 할 명분은 없지 않을까! 미국 매사추세츠 어느 농구 경기장에서는 누가 봐도 우람한(?) 트랜스젠더 선수가 휘두른 팔에 그를 막아서던 세 명의 여자 선수들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산을 깎아서 강을 메우는 것이 제일 어리석다고들 한다. 산은 산대로 강은 강대로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럽고 그 하모니(harmony)가 제일 아름다운 법이다.

X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 수 있습니다.